오늘의 말씀

제목3월 19일(수)2025-03-19 10:05
작성자 Level 10

마태 20:23, 25-27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놓고“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 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예레 18:18, 20 “그 말을 듣고 이 백성은 수군거립니다.‘예레미야를 없애야겠는데 무슨 좋은 계책이 없을까? 이 사람이 없어도 법을 가르쳐줄 사제가 있고 정책을 세울 현자가 있고 하느님의 말 씀을 들려줄 예언자가 있다. 그러니 이자를 그가 한 말로 때려잡자. 이자의 말마디 마다 조심하여 듣자.’ 고 합니다....이런배은망덕이 어디 있습니까? 이 목숨을 끊으려고 함정을 팝니다. 제가 당신 앞에 지켜 서서, 이 백성을 잘되게 하여주십사고 아뢰며 분노를 거두어주십사고 아뢰던 일을 잊지 마십시오.” # 오늘의 묵상: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고통을 타인의 고통으로 대체하려 한다 여러 신화와 문학, 그리고 연극 등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변화를 모색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과 세상 심지어는 하느님까지도 바꾸려고 하는 파괴적인 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오만함은 그리스 연극의 오랜 주제이고 모든 비극의 핵심적인 내용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변화를 고집하다가 결국은 살인과 같은 비극적 종말이나 전쟁 같은 파국적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같은 인간의 성향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정당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고, 결국에는 자신도 더 큰 고통을 받게 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이 말이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오늘 두 독서 속에서도 우리는 이와 유사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1독서에서 우리는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시민들이 예언자 예레미야의 생명을 노리며 흉계를 꾸미는 것을 봅니다. 예레미야는 진실한 예언으로 유대인들의 부패를 폭로했으며, 이 때문에 예레미야는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시민들에게는 살려둘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선택된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그들을 용서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어지는 전체 문맥을 읽어보면 그 역시도 복수의 순환고리에 빠지게 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수와 폭력을 통한 구원의 길이 아니라, 희생과 고통을 통한 구원의 길을 따르라고 초대하고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보고 먼저 고통의 잔을 마시라고 요구하는 대신에 우리 자신이 먼저 그 고통의 잔을 마시는 긍정적인 행동을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비록 세상의 상식이나 처세와 반대일지라도... 우리는 자신들의 어머니를 예수님께 보내어,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청하는 두 제자를 봅니다. 성서는 다른 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 크게 질투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들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체의 모습은 우스꽝스런 만화의 한 장면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에게 하시는 말씀 이기도 합니다. 나는 불공정한 일방적 희생을 바라지는 않지만 지금의 교회와 사회를 보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의 변화보다는 타인이 변화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이 말씀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진실인 것을 깨닫게 하소서. 정말 우리가 자신이 받을 고통 대신 타인들에게 그 고통을 전가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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