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21:28-32
“또 이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먼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하고 일렀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는 대답만 하고 가지는 않았다. 이 둘 중에 아버지의 뜻을 받든 아들은 누구이겠 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셨다.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사실 요한이 너희를 찾아 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쳐줄 때에 너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 오늘의 묵상: 내 안의 두 아들
최근에 막 홀로서기를 시작한 친구가 자주 전화를 걸어옵니다. 예고 없이 날벼락처럼 찾아온 큰일을 정신없이 치르고, 온전히 혼자라는 현실을 마주 하며 가장 먼저 생각난 친구가 ‘저’라고 합니다. 동병상련의 진정한 이해와 위로가 절실하겠지요. 그런데 사소한 결정도 좀체 머뭇거리고 지인들의 한 마디 말도 섭섭해 합니다. 마치 아프다는 완장으로 엄마에게 떼를 쓰는 아이 같습니다.
제게도 있었던 비슷한 시간들을 돌아봅니다. 주변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 스러워서 그냥 모른 체 하라고 했습니다. 건네는 위로의 말로 인해 들킨 저의 슬픔에 짜증이 났지만, 동시에 무관심에는 섭섭했지요. 변덕스러운 제 안의 두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은근한 정서적 횡포를 부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람들의 갖가지 마음과 상황을 들으며 그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일에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묵상은 변덕스런 제 안의 두 마음을 달래어 주고, 기도는 주님께서 늘 함께하심을 일러 줍니다. 저의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신앙의 성장이라는 새 살이 돋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전례독서 소모임을 통해 한 주마다 주시는 말씀을 함께 읽고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디모 4:7)라고 고백하는 바울로의 말씀을 묵상하며 한마음으로 주님께 향하기를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오늘을 지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내일도 주님의 자녀로 훌륭하게 살며 믿음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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