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 13:31-35
바로 그 때에 몇몇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가까이 와서 “어서 이 곳을 떠나시오. 헤로데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그 여우에게 가서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를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이면 내 일을 마친다.’ 하고 전하여라.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다른 곳에서야 죽을 수 있겠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너희 성전은 하느님께 버림을 받을 것이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찬미받으소서!’ 하고 너희가 말할 날이 올 때까지 너희는 정녕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 오늘의 묵상: 직면
삶이 힘들다며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지인이 있었습니다. 자살이 죄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하곤 했지요. 오랜 시간, 여러 차례 그와 이것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런 생각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그에게 호흡곤란 증상이 왔답니다. 숨이 가빠져 주변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답니다. 그 순간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하느님께 제발 살려달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답니다. 늘 하루 빨리 하느님께서 데려가시면 좋겠다고 말하던 자신이,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모습에 스스로도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를 통해 사람이 삶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큰지, 자신의 안전에 대한 욕구는 또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당시 최고의 권력자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데도 예수님은 왜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을 위협하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보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사람이라도 살리시고 치유하시려는 그분의 사랑은 진정 무엇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 오늘의 기도
주여, 저의 오늘이 당신의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저 역시 그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을 직면하는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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