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1:32-44 / 모든 성인의 날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곳에 찾아가 뵙고 그 앞에 엎드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들이 “주님, 오셔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저것 보시오. 라자로를 무척 사랑했던가 봅니다.” 하고 말하였다. 또 그들 가운데에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라자로를 죽지 않게 할 수가 없었단 말인가?”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다시 비통한 심정에 잠겨 무덤으로 가셨다. 그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 예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자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그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
예수께서 마르타에게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하시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제 청을 들어주시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여기 둘러선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라자로야, 나오너라.” 하고 큰소리로 외치시자 죽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 오늘의 묵상: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얼마 전에 삼십 대의 직장 생활하는 아들과 큰소리를 내며 다퉜습니다. 아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감정이 상하고 마음이 불편해서 며칠간 꽤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아들은 크면서 아빠인 저로부터 충분히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했다는 상처가 깊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식이 장성하고 어른이 되니까 나이 든 부모도 자식으로부터 더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어집니다.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 달라는 어른 남자들이 부딪힌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듣는데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하시는 곳에서 멈췄습니다. 그리고 제가 묶어놓은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배울 만큼 배우고 건강하게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아들에게 저는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 ‘너는 아직도 경험이 부족하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다’ 하는 끈으로 묶어놓고 있었습니다.
생각으로는 벌써 독립시켰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실제 마음 밑바닥에는 여전히 질긴 끈을 붙들고 놓지 못했습니다. 오늘 ‘아들을 온전히 풀어줘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그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충분히 독립한 자식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간섭과 개입을 계속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 부모의 존재감을 느끼고 싶은 무의식적인 표현 같은데 쉽게 멈춰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걸 멈추면 또 다른 방식을 찾으려고 할 것 같습니다.
진짜로 ‘아들을 풀어주어 가게 하고’ 나서 올 허탈함과 무력감을 잘 감당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제가 얼마나 아들과 다른 이들을 묶어놓고 있는지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시길 기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함께 사는 이들과 저 자신을 묶고 있는지 깨닫게 하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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