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제목3월 31일(월)2025-03-31 23:17
작성자 Level 10

이사 65:17-18 “보아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지난 일은 기억에서 사라져 생각나지도 아니하리라. 내가 창조하는 것을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요한 4:50-51 예수께서“집에 돌아가거라. 네 아들은 살 것이다.”하시니 그는 예수의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길에 마중 나와 그의 아들이 살아났다고 전해 주었다. # 오늘의 묵상: "새로운"것이 포함될 수 있을까? 오늘의 독서 사이에는 분명한 연결점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단지 독자들과 설교자들이 그 둘을 연결 짓도록 만드는 충분한 가능성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 중 하나를 시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예언자들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예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해이기도 합니다. 예언자들은 큰 그림과 흐름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무엇이 언제나 영원한 진리인지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사야 같은 예언자들은 보고 들음으로써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 안에 언제나 흐르고 있는 진정한 이야기, 하느님의 이야기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메시지는 언제나 우리 삶에 더 넓고 더 우주적인 차원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 하시고, 슬픔과 눈물을 없애고 기쁨과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구체적인 특징들에 대해서 말하기보다 여기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언제나 진리이고 진리이어야 하는 진리의 큰 틀을 말할 뿐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역사와 진실에 대해 더 큰 감각을 지녔던 것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큰 틀이 드러나는 것을 보기 위해서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 것 같습니다. 복음서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셨을 때 죽어가는 아들을 치료해 주시기를 바라는 ‘고관’을 만나는 내용이 나옵니다. 평범한 유대인도 아니고 높은 지위에 있는 이방인이었던 그 사람이 공적인 자격증조차 없이 방랑하는 유대인 치유자를 믿는다는 것은 분명히 새로운 일입니다. 그 고관은 “집에 돌아가거라. 네 아들은 살 것 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떠나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그는 마중 나온 종들을 만나서 그의 아들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의 슬픔은 이제 기쁨으로 변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사역 중에 치유의 몇 가지 사례들 중의 하나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의 신앙심이나 충성심을 따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그 고관의 부부관계가 어떤지 또는 그가 죄를 진정으로 회개를 했는지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예언자는 (종종 왜곡된 질문들을 묻는) 그의 고향 사람 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한다.”(요한 4:44)는 것에 대한 설명인 것처럼 보입니다. 내부자들이 자기들만의 작은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과 계속 싸우는 동안 주님 곁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바로 외부인들 이었습니다. #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 하느님, 주님 마음을 제게 주소서. 주님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시고, 이 땅 위에서 주님과 함께 진정으로 새 일을 행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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