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6일 토요일
마태 9:14-17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우리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주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잔치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낡은 옷에다 새 천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낡은 옷이 새 천조각에 켕기어 더 찢어지게 된다. 또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 오늘의 묵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나이가 드니 얼굴과 장기가 낡아가느라 몸 안팎에서 아우성들을 칩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유난히 여기저기 쑤셔서, 마음조차 몸에게 항복할까 봐 서둘러 성경을 펼쳤는데, 말씀 중 “새 부대”라는 단어에 제 묵상이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겉은 낡아도 속은 말랑한 새 가죽으로 남아 있어야 할텐데, 제 속은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낡은 가죽으로 변해 버린 게 틀림없습니다. 얼마 전에 손자 녀석이 파마를 하고 나타났는데, 그 후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마다 화산 폭발한 듯 앞이마와 머리 꼭대기에 난리가 나는 것을 보면 몹시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뮤지컬을 한다며 느닷없이 예고에 편입했다는 손녀도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이렇게 내 아이들의 모습조차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가 그동안 남에게는 얼마나 보수와 편견의 잣대를 들이댔을지 돌이켜 봅니다. 자신은 완고한 생각과 삶의 나쁜 습관들과도 헤어질 결심을 못하는 주제에 속으로 내 멋대로 남을 재단하며 오만의 죄를 범해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 부대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명하시는 말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보수와 집착의 낡은 가죽옷을 벗어 버리려 애쓰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다하면, 주님께서 제 안에 오셔서 저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새 가죽으로 갈아 입혀 주실까요?
# 오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지는 하루하루가 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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