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6:6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다오.
루가 18:13-14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 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 오늘의 묵상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영웅적인 희생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 얼마 나 부드럽게 작용하는지를 깨닫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호세아서가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주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호세아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주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자신을 방어하기도 하시고(마태 9:13), 안식일 법을 지키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고 비판받는 그의 제자들과 자신을 변호하기도 하셨습니다(마태 12:7).
마태오복음 9장, 12장에서 모두에서 주님은 “가서 이 말의 의미를 배우라”고 주님과 제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배우는 것은 당시 주님을 비난하였던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면, 세리와 바리사이파의 복음이 드러날 것이고, 우리는 예수님이 현대 심리학자들보다 2000년을 앞선 통찰력 있는 교사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바리사이파는 자신의 영웅심으로 드러내고 싶은 마음으로 율법을 희생적으로 지켰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행동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욱 크게 자신의 이고(ego) 와 자아의식을 강화시킨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께는 그런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이같이 영웅심에서 비롯된 희생은 하느님을 통제하려는 시도입니다.“나는 한 주 에 두 번 금식하고,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의 십일조를 바친다. 나는 저 사람들과 같지 않다.”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사회적보상은 자신을 치켜세우게 합니다. 사회적 보상이라는 자리에서 하느님과 나라를 위한 생각은 쉽게 잊혀 질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데 있어 희생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자주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구별짓게 함으로써 더욱 긍정적인 자아 이미지를 형성하려는 시도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주목하여 보십시오.“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탐욕스럽지도, 부정직하지도, 삐뚤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이 말이 하느님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자신을 치켜세우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우리의 세리 친구는 분명히 그 말들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멀찍이 떨어져서 머리를 떨군 채로 그의 가슴을 치며‘하느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라고 놀라운 결론을 내리십니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공식적으로 거룩한 사람이지만 예수님 눈에는 전혀 거룩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세리는 이스라엘에서 죄인으로 취급받던 사람이지만 예수님 눈에는 거룩한 사람이었고, 그는 결국 성인(聖人)이 됩니다.
# 오늘의 기도
자비하신 하느님, 제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것은 제가 참다운 저의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보잘것 없는 저는 이제 주님에게 오직 유일하고 진정한 저 자신을 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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