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 13:1-9, 15-17, 19-30, 33-62 / 요한 8:1- 11
요한 8:7-8
그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므로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 오늘의 묵상: 욕망과 사랑
신학교 시절 채플실에서 오늘 본문(다니엘 13장)을 낭독할 때면, 어느새 교수님의 얼굴은 불편한 표정으로 씰룩거리곤 했습니다. 나체의 여인이 목욕을 하고, 음탕한 장로들이 훔쳐보며, 그들의 죄를 덮으려고 순결한 수산나를 규탄하는 성서의 장면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매우 도발적인 것이었습니다. “나에게 향유와 비누를 가져다 주세요.” 수산나가 하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목욕하는 동안에는 정원 문을 닫아줘요.”그녀는 추악한 두 명의 원로가 수풀 위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영리한 집전사제는 의례히 우리에게 짧은 버전의 독서를 사용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다니엘서 13장 전체를 샅샅이 살펴보곤 했습니다. 이 부분을 외경으로 분류하여 정경에서 제외해버린 개신교인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수산나의 일화는 빼자니 아쉽고 넣자니 부담스러운 소재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요한이 전하는 경탄할만한 복음, 곧 간음한 여인이 잡혔다가 풀려나는 이야기가 뒤따라 읽혀지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성서학 수업에서는 이 부분이 요한복음 8장에 삽입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앞뒤 문맥과 연결성이 없고, 초기 사본에서는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오늘날엔 모두가 이 내용을 정경으로 인정하며, 귀중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당당한 본문으로써, 공적으로 읽혀진다는 점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대체로 우리는 다른 문제들에 비해 성(sex)에 관해서는 과민하고, 당황하며, 죄의식을 느낍니다. 심리학자 칼 융이 “콤플렉스”라 일컫는 것입니다.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흘러넘치는, 모든 종류의 강하고 무의식적인 에너지를 지탱하는 다양한 생각 또는 이미지를 말합니다. 지나치게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우리가 콤플렉스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늘 낯설고 혼란스러운 반응을 나타냅니다. 여기 두 가지 성서독서를 통해 이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욕정’ 과 진실한 ‘사랑’을 구별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대다수 남성들에게 있어서, 그 차이를 인식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우리는 오늘 두 편의 독서를 통해 바로 그러한 남자들, 그리고 그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 놓인 두 여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로부터 다수의 좋은 설교가 탄생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예수의 말씀 중에 가장 많이 인용되었을 법한 단 한줄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 여인을 보호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에게 몇 마디 덧붙일 기회를 허락한다면, 예수님께서 몸을 굽혀 바닥에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장면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주위를 에워싼 남자들의 잔인한 고발과 적대적인 시선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예수는 그들 스스로 책임을 깨닫기 원했습니다.
정죄하는 눈길로 그들과 맞서는 일을 피함으로써, 넓고 보편적인 사랑을 몸소 드러내신 것입니다.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요한 8:11) 는 선언은 그 여인뿐만이 아니라, 그녀에게 죄를 따지고 있는 모든 군중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예수의 놀라운 해결방식, 곧 “제3의 해법”인 것입니다.
#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느님, 당신의 사랑 크시기에 우리의 허물조차 품으시나이다.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사랑이라 착각하는 우리의 서투른 실천들을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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