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제목4월 14일(성 월요일)2025-04-14 09:33
작성자 Level 10

이사 42:1-2, 4, 7 그는 뭇 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 주리라. 그는 소리치거나 고함을 지르지 않아 밖에서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가 땅 위에 정의를 세울 때까지… 나, 너의 주는, 너를 정의가 승리하도록 너를 불러… 눈 먼 자들의 눈을 열고, 옥에 갇힌 자를 풀어 주리라. # 오늘의 묵상: "하느님의 종"을 섬기는 종 저로서는 오늘 두 본문 사이에서 어떤 뚜렷한 연관성도 찾지 못했습니다. 계시와 신학의 걸작품으로 이 두 본문은 독립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 “종의 노래들”의 첫 부분을 접하게 되는데, 이 종의 노래들은 여러분이 이 주간 계속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감춰져 있는 이 네 노래들은, 예수께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견한 탁월한 분석으로 볼 수도, 또 예수님께서 이 아름다운 묘사들을 “모델로 삼아” 그것을 이루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든, 예수님과 종의 노래 사이에는 신비한 깊은 상호 연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 “종” 처럼 행동한 여인이 나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두 본문이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요?) 베다니의 마리아가, 마르타와 함께 손님 접대를 하는 대신, 열렬한 제자의 역할을 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기서 예수의 발에 값비싼 나르드 향유를 부었는데, 나르드는 죽은 이를 장사 지낼 때 쓰는 향유였습니다. 세 복음서에 나타난 이 이야기의 기록을 종합하여, 저는 이것이 마리아가 예수님 죽음의 불가피함을 미리 받아들인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남성 제자들과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온 집안이 향기로 가득 찼습니다.” 유다가 이 이야기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데, 그는 이와 같은 단순한 사랑의 표현보다 가난한 이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요점입니다. 오늘 본문의 저변에는 요즘 우리들이 말하는 소위 좌파(젤롯당원들)와 우파(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이데올로기에 대한 균형과 심도 있는 비판이 깔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응은 신명기를 직접 인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이 땅에 항상 가난한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명령한다. 이 땅의 빈곤한 자, 가난한 자들에게 항상 인심을 후하게 써라(15:11).” 불행하게도 복음 본문에서는 첫 구절이 인용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인용하여, 사회 정의보다 종교적 경건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바울로가 “내가 나의 모든 소유를 내어 주고 또 내어 줄지라도, 또한 내 몸을 불사르도록 내어 줄지라도, 사랑을 지니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고린 13:3)”라고 했듯이, 예수님께서는, 정의를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똑같으신 하느님 속성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 오늘의 기도


사랑과 정의의 하느님, 저로 하여금 사랑과 정의가 다른 것이 아님을 알고 행하게 하소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정의이며, 정의로운 사람은 사랑과 존경을 품고 일해야 함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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