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하 5: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준대로 요르단 강으로 내려가서 일곱 번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그러자 새살이 돋아 그의 몸은 마치 어린아이 몸처럼 깨끗해졌다.
루가 4:28-30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는 모두 화가 나서 들고 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어냈다. 그 동네는 산 위에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뜨리려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 오늘의 묵상: 왜 나의 것이 너의 것 보다 더 나은가?
오늘 본문은 우리들이 쉽게 행하는 편가르기에 대하여 일침을 가하시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우리 민족, 우리 편, 또는 우리 생각대로 하신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비웃는 것입니다. 두 본문 모두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어리석음에 빠지는지를 분명하게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열왕기하의 말씀에는 시리아 군사령관이며 나병 환자인 나아만 장군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어린 여종이 있는데 그녀는 진정한 영적인 능력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나아만은 여종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에 가서 치료받기를 원했고, 자신의 재물과 명성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16-19절을 보면 엘리사는 그의 그러한 생각들을 거절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언자의 집 앞에 도착한 나아만은 얼른 엘리사를 만나 치료받기를 원했지만, 엘리사는 그를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아만의 고향인 시리아에 있는 강보다 더 작고 보잘 것 없는 요단강에 가서 목욕이나 하라는 처방을 하였습니다. 그는 크게 분노했지만 그를 만류하는 부하의 조언을 듣고 불편한 마음으로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요단강에서 목 욕을 했습니다. 그 결과 나아만은 온전케 되었습니다.
성서는 이 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나 큰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은총을 받을만한 아무런 자격도 없던 사람이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나아만은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의 수혜자입니다. 그가 하느님의 은총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은총이 그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우리 대부분의 사람처럼 재물과 세속적인 명예에 기대여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그런 사람에게 기대 밖의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이야기를 가지고 어떻게 이방인들 혹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게 되는지를 이야기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 혹은 교회 안의 신자들이 어떻게 은총을 놓칠 수 있는가를 지적하시고 계십니다. 고향에서 존경받는 예언자는 없다는 말씀으로 하느님께서 왜 이방인들에게 역사하시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언자 엘리야가 당시 기근으로 수많은 유대 과부들이 굶주리고 있었지만 왜 유대 경계 밖에 사는 사렙다 이방 과부에게 보냄을 받았는지를 깨우쳐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은 우리 편이라고 주장하면서 독선적인 마음으로 회당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주님은 편견과 고집의 경계를 넘어선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회당 안에 있던 모든 유대인들이 크게 분노하면서 예수를 잡아 도시 밖으로 끌고 가서 절벽에 떨어뜨리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메시아가 아니라면 예수님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패거리의 진리가 아니라면 그런 진리는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을 위한 치유와 생명이 되어야 하는 종교가 종종 소수를 위한 경계를 지켜주는 죽음의 종교가 되는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 오늘의 기도: 이스라엘과 사마리아와 시돈과 시리아의 하느님, 주님은 이 모든 곳에서 정말 같은 분이십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제한하고 우리의 규칙과 교리를 하느님께서 따르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리를 깨우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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