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8:21-19:2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하늘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셈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 왔다.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아라.’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곧 다 갚아드리겠습니다.’ 하고 애걸하였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 하고 호통을 쳤다.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주게.’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두었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며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 오늘의 묵상: 사과와 용서하기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매일 바치는 주의 기도 중 항상 이 말씀이 걸리는데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기도 전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습니다. 진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도 용서를 안 하신다고 하시고, 일곱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는데 저는 단 한 번이라도 어렵습니다.
머리로는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가슴으로는 용서가 안 될 때가 많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내가 탕감 받은 일만 달란트보다 내가 받을 백 달란트가 더 크고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용서받은 것과 내가 용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가 집으로 친구를 데리고 와서 놀다가 그 친 구가 손녀가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둘이 다툼이 있었고, 손녀가 친구에게 서운한 말을 하니, 친구는 마음이 상해서 집으로 가고 싶으니, 저에게 자기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설득 해도 손녀는 본인이 친구에게 말을 잘못한 것은 알지만 사과하기는 싫다고, 끝까지 사과를 안 하고 헤어졌습니다. 8살짜리 어린아이도 사과하면 자기가 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하물며 수십 년 동안 사고가 굳어버린 어른들이 사과하고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과도 어렵지만 용서는 얼마나 더 어려울까요?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을까요? 조용히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으면 사과도 용서도 일곱번씩 일흔 번이라도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저를 더 온전히 비워야 하겠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와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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