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2:12, 14
“의인은 우리를 방해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긴다고 우리를 책망하고 배운 대로 하지 않는다고 나무라니 그를 함정에 빠뜨리자.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늘 우리를 책망하기만 하니 그를 보기만 해도 마음의 짐이 되는구나.”
요한 7:1, 25
그 뒤에 예수께서는 유다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으므로 유다 지방으로는 다니고 싶지 않아서 갈릴래아 지방을 찾아 다니셨다. …….한편 예루살렘 사람들 중에서 더러는 “유다 인들이 죽이려고 찾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 오늘의 묵상: 위협적인 "타인"을 악마 취급하는 일
한 집단이 다른 한 집단을 배척하기로 일단 작정하면, 모든 화젯거리가 그들에게 집중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집단에 대한 최악의 가정들을 믿는 경향이 있으며, 지나친 편견과 망상이 확대되어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험담이 난무해집니다. 사람들의 오롯해진 불신은 그들을 두려워하고 증오하며, 심지어 없애버리기 위한 타당한 구실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집단이나 개인을 향한 어떠한 공격행위도 정당화되기에 이릅니다. 넘쳐나는 험담과 악소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슬프지만 이것은 인류역사 속에서 되풀이 되는 경향입니다.
성주간의 절정을 목전에 두고, 오늘 읽은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는 분위기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지혜서가 전하는 조롱의 목소리들은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에게 익숙한 내용입니다. 십자가 처형의 한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저자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이 그를 지켜주지 않겠는가!”여기서 우리는 자신을 증명해 보라고 ‘의인’을 부추겨대며, 허세와 저항을 드러내는 군중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똑똑하고 인기 있어 보이는 학생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처럼 말입니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세워놓은 틀에서 벗어난 사람을 보면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험인물로 찍어놓고 해하려드는 가혹한 사람들 말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복음서 안에서도 발견됩니다. 종교 권력자들은 지나치게 유별난 예수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람들은 이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종교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두려움과 흉한 말들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폭력은 종종 그 은밀함을 벗어나 공개적이 됩니다. 예수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리기 위해 모든 시도들이 총동원되었는데, 이 또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요한복음 7장 전체를 읽어보면 음모와 악의로 가득한 당시의 분위기를 보다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서서히 고립되어 갔고, 반대자들의 핍박을 피해 은밀히 움직였습니다. 예수님의 외로움과 고뇌가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주님께서 할 수 있는 일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진리의 근거를 주장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참여하도록 초대 받은 이 사순절 기간을 통해서, 역사 이래 미움과 핍박을 받아온 모든 이들이 느꼈던 두려움과 고독에 대해서도 함께 공감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기도
사랑과 진리의 하느님, 온갖 악소문과 비난으로 가득한 세상을 멀리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마음속에서조차 다른 사람을 해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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