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23:13-22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하늘 나라의 문을 닫아놓고는 사람들을 가로막아 서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못 들어가게 한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겨우 한 사람을 개종시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개종시킨 다음에는 그 사람을 너희보다 갑절이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고 있다.”
“너희 같은 눈먼 인도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성전의 황금을 두고 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 하니, 이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황금이냐? 아니면 그 황금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전이냐?
또 너희는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그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두고 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 하니, 이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 냐? 아니면 그 제물을 거룩하게 만드는 제단이냐? 사실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한 맹세이고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분을 두고 한 맹세이며 또 하늘을 두고 한 맹세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두고 한 맹세이다.“
# 오늘의 묵상: 하느님이 주신 삶에서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가?
수년 전 겨울,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보름간 미국 자유여행을 했습니다. 여행의 막바지에 보스턴에 도착했는데, 폭설로 도시가 마비되었습니다. 숙소 주인은 근처 국회의사당 앞에서 눈썰매를 타러 갈 것을 권했습니다.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의사당 앞에서는 이색적인 축제가 펼쳐졌습니다. 스키 복장을 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썰매를 타고 있었습니다. 아들도 함께 썰매를 타며 연신 환하게 웃었습니다.
문득, 지난 보름 동안 아들이 이처럼 환하게 웃은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 동안 아들이 명소, 맛집, 공연 그리고 캠퍼스를 하나라도 더 경험하게 하려는 욕심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정을 꽉 채웠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이 흐트러진 날, 아들은 가장 여행다운 여행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시간은 바둥거리며 무엇으로 채워 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온전히 누리며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덧 올해 그 아들이 고3 수험생이 되었습니다. 주말 저녁에 식사를 마치고, 아들은 사춘기 여동생과 함께 배드민턴을 칩니다. 동생이 여기저기로 마구 보내는 셔틀콕을 연신 힘겹게 받아 내어 주곤 합니다. 그리고 남매의 환한 웃음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가득 채웁니다. 이를 지켜보는 저희 내외도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러나 제 속에는 또 다른 고질적인 못된 생각이 꿈틀거립니다. ‘고3인데, 공부시간을 허비하는 것 아닌가?’ 하느님께 여쭙니다. ‘무엇이 더 중한 것인가요?’ 이내 저는 이미 답을 알면서 그 답을 애써 피하며, 하느님께 질문하고 있는 부끄러운 제 자신을 대면하게 됩니다.
#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느님, 세상의 황금과 재물을 위해 하느님이 주신 이 소중한 삶을 헛되이 보내 지 않도록 지혜와 은총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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