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가리야 송가(루가 1:68-79)
찬미하여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당신의 백성을 찾아와 해방시키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 있는 구세주를 당신의 종 다윗의 가문에서 일으키셨다.
예로부터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빌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또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해 주려 하심이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 하시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대로 우리를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시어 떳떳하게 주님을 섬기며 주님 앞에 한 평생을 거룩하고 올바르게 살게 하심이라.
아가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예언자 되어 주님보다 앞서 와서 그의 길을 닦으며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길을 주의 백성들에게 알리게 되리니 이것은 우리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의 덕분이라. 하늘 높은 곳에 구원의 태양을 뜨게 하시어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 추어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주시리라.
# 오늘의 묵상: 주님이 오신다면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기입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린다고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릴 적, 늦은 시간까지 퇴근하시는 엄마를 기다렸던 이유는 엄마가 회사에서 나온 간식을 드시지 않고 나에게 주시려고 가져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샌드위치나 햄버거는 나에게 귀한 간식이었기 때문에 졸려도 기다렸습니다. 새로 나온 책을 사기 위해 예약을 걸어놓고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애인을 만나기 위해 야근하는 그를 세 시간이나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이런 기다림은 거의 기다린 보람, 즉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 주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 는 것은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봅니다. 늘 깨어서 기다리라고 하는데 예수님을 기다리면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분명 예수님은 나의 개인적인 바람을 이뤄 주시려고 오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은 늘 약자에게 잔인합니다. 사회는 사회적 소수자,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에게 공평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참사로 희생된 많은 사람들에게조차 세상은 잔인합니다. 월급은 오르지 않고 물가만 오릅니다. 이럴 때 가난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궁핍해집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달라지 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약자들은 권력 가진 자들의 횡포에 눌려 살았고 억압에서 해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슬픈 자리에 오실 것입니다. 차별 당하는 자, 배고픈 자, 아픈 자에게 오셔서 만나 주실 것입니다.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춰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오소서, 주님.
# 오늘의 기도
주님, 어두운 세상에 오시어 아픈 곳을 비춰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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