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 19:1-2,11-18 / 마태 25:31-46
레위 19:2, 15
너는 이스라엘 백성 온 회중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나 야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하지 마라. 영세민이라고 하여 두둔하 지 말고, 세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봐주지 마라. 이웃을 공정하게 재판해야 한다.
마태 25:40, 45
그러면 임금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임금은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 오늘의 묵상: 중요한 계명이 언제나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성서인 레위기 19장을 읽으면, 출애굽기 20 장의 십계명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 입니다. 레위기와 출애굽기의 십계명을 보면, 계명들 사이사이에 장황한 말들이 섞여 있어서 꼭, 열 개의 계명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시나이산 꼭대기에서부터 들고 내려올 수 있을만한 정도의 크기의 돌판에 이 모든 내용을 어떻게 쓸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모세는 나귀나 작은 수레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모세는 사람들 앞에서 그 돌판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복음 25장의 최후 심판 이야기로 아주 중요합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서의 십계명과 완벽한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둘은 유구한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의 처음과 끝을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레위기는 사람들이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사회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기준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접점은 “황금률”(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을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따르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이 계명은 단순히 어떠한 경계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며 경계 안에 있지 못하는 사람들인 이방인, 범죄자, 상처받은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부분까지 넓혀집니다. 이것은 솔직히 많은 신앙인들이 해내지 못하였던 대단한 도약입니다.
여러분은 십계명을 완전히 지키고도 최후의 심판 때에 예수님이 제시하는 기준에 다가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가능성은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18절에 기록된“네 이 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는 말씀을 지키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레위기를 인용해서 하신 말씀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도덕적으로 이웃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웃과 하느님을 동일하게 바라볼 것을 요구하십니다.“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하느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너무 힘든 요구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왼쪽 염소의 편에 남아 있을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하느님, 어쩌다 한 번씩이라도 제가 오른편에 자리한 양의 무리에 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제 삶의 많은 부분이 왼편에 자리한 염소였음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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