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1:12-13
그 뒤에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 그 곳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오늘의 묵상: 유혹은 작은 것에 집착하는 끌림이다
사순 1주일 복음서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유혹을 받으셨듯이, 사순절을 지내는 우리도 여러 가지 유혹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혹 받으신 이야기를 읽으면서, 몇 가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 이시라면, 어떻게 유혹을 받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조금 양보해서, 하느님도 유혹을 받으실 수 있다고 한다면, 왜 유혹을 받으시는 걸까 요? 사실, 성서는 어떤 면에서 예수님보다 마귀를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분명, 우리 는 오늘날 예수님과 하느님에 대해서 복음서 기자들과는 다른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하느님이 아닌 평범한 ‘인간’ 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인성에 유혹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요?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요? 유혹을 당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될까요?
저는 어떤 사람이든 권력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만나는 유혹이 바로 예수님께서 겪으신 세 가지 유혹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유혹은 하느님이 아닌 것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입니다. 다시 말해 일상생활과 관련된 권력, 종교와 관련된 권력, 그리고 정치권력까지도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싶은 유혹입니다. 이렇게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은 유혹은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비극을 낳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그 결과 악마는 그분을 떠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당신의 권능을 세상 사람들의 방식으로 사용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이러한 악마의 유혹을 이겨낸다면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크게 쓰실 것 이지만, 만약 이겨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분명 악마에게 이용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간과해버리기 쉬운 것 한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선한 것, 부분적으로 좋은 것, 우리에게는 좋은 것이지만 남들에게는 안 좋은 것들에 유혹을 당합니다. 유혹은 언제나‘선한 것, 좋은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하신 것 같은 유혹을 받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우리들이 택하는 여러 결정들은 온전히 선한 것과 온전히 악한 것 사이, 그 어디쯤에 위치합니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선하게 보일지라도 선의 다양한 층위라는 면에서 볼 때, 부분적인 선은 자기중심적인 자아로 말미암아 절대적인 선으로 인지되거나 악한 것조차도 선한 것으로 위장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어려움에 빠뜨리는 것들입니다.
오늘 복음에 드러난 예수님의 영적 통찰력은 대단하고 놀랍습니다. 그 통찰력은 단지 율법이나 규칙을 분별하고 따르는 차원의 통찰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설명하기 어렵고 특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도덕적인 계명을 언급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신명기의 말씀을 언급하셨을 뿐입니다.
# 오늘의 기도
하느님! 제 안의 여러 영들로부터 난폭한 야수를 구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여, 제가 얼마나 자주 선한 것과 악한 것을 혼동하는지를 볼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소서. 제가 진리를 알 수 있는 분별력을 주시고,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는 결단력을 허락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