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6:52-59
유다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서로 따졌다.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은 너희의 조상들이 먹고도 결국 죽어간 그런 빵이 아니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가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하신 말씀이다.
# 오늘의 묵상: 사료를 먹는 것과 식사하는 것
몇 년 전 먹는 것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강연자는 현대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관점을 소개하면서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은 식사이지만, 한 끼 식사를 때우는 식으로 혼자 음식을 먹는 것은 사료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식사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과 동의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중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묵상할 때, 저는 발터 벤야민의 통찰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모님 혹은 배우자가 정성스럽게 차려준 음식을 먹을 때 거기에는 상대방의 사랑이 담겨있고, 또한 식사할 때 우리는 단지 음식이라는 물질을 섭취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사랑을 먹고, 상대방과 사랑을 교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영한다는 것은 그저 관념적이고 교리적인 학설을 믿는 것을 넘어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한 사랑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신비로운 차원임을 느껴봅니다. 만일 그러한 신비가 없다면 우리는 그저 면병과 포도주라는 물질을 사료처럼 먹는 것이겠죠. 그럴 때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 오늘의 기도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 당신을 영할 때 당신의 사랑을 영하는 것임을 잊지 말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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