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6:5-11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 돌아간다. 그런데도 너희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한 말 때문에 모두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
그분이 오시면 죄와 정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그분은 나를 믿지 않은 것이 바로 죄라고 지적하실 것이며 내가 아버지께 돌아가고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하느님의 정의 를 나타내시는 것이라고 가르치실 것이고 이 세상의 권력자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로써 정말 심판을 받을 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주실 것이다.”
# 오늘의 묵상: 이별
한참 된 것 같은데 사명을 가지고 살아갈 때 동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산으로 떠나갔습니다. 그 허전함과 떠난이의 몫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버거운 마음에 가는 길을 축복해 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갈 길을 분명히 정한 동지를 붙잡을 명분이 나에게는 없었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헌신 했고 또 가려고 하는 여러 이유가 납득이 되었고, 쉬게 해주고 싶은 것도 마음 한켠에 있어서 가는 길에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영영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현재에 충실히 살고자 누군가 떠나가면 잘 만나지 않는 편이어서 다시 못 만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 해가 지나서 그 동지는 트럭 한 가득 밭에서 캔 양파를 싣고 와서 “양파 사세요. 양파가 달아요” 하면서 우리의 봄을 다시 울렸습니다. 기가 막힌 만남이었지요. 내 삶의 자리에서 양파를 팔고 또 자라는 아이들도 돌보고 또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각자의 마을의 사정도 살피면서 밤이 가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또 한 트럭 다 비우고 동지는 자기 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다시 올라오고 우리는 다시 이어져서 삶을 기도를 그리고 함께 키우는 아이들을 살피며 더 한뼘 성장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떠나가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했을 때 그런 것은 상상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섭섭하고 또 무섭고 또 슬펐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이별하는 일은 좀 더 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는 것을 버려야 더 넓은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익숙한 것은 더 깊어지는 관계로의 초대라는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 길 나서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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