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 9:4, 8
“나는 내 하느님 야훼께 마음을 털어놓고 기도를 드렸다. 주님, 크고 두려우신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여 말씀대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계약을 어김없이 지키시는 하느님, 우리는 못된 일만 하였으며 비뚤어진 짓만 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배신하고 몹쓸 짓을 하고 명령과 법을 어겼습니다....야훼여, 우리는 임금들이나 고관들이나 조상들까지 모두가 주께 죄를 얻어 얼굴을 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루가 6:36-37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비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 오늘의 묵상: 비추어보기
인간은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주시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면서 자기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것을‘비추어주기’(Mirroring)라고 부릅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들의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모습을 자녀들에게 비추어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자녀들의 삶을 축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부모는 자녀들에게 그들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만을 투사하게 됩니다.
제1독서 다니엘서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거울에 자신과 이웃을 비추며 기도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의 모든 기도는 이스라엘의 그릇된 삶으로 말미암은 죄의식을 기반으로 드려지고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가득차고, 자신을 미워하고 부정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은 얼굴을 들 수 없다는 표현을 거듭해서 사용하며 그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슬픈 눈을 투사하며 그들이 얼마나 가치 없는 삶을 살았는지를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우리를 비추어주시는 주님은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기서 우리는 전적으로 긍정적인 ‘비추어주기’(Mirroring)의 완벽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받아들이면 당신도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부정적인 심판의 이미지만 받아드린다면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비난하고 자책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가 받은 것을 줄 수 있고, 받지 못한 것을 줄 수 없다는 것, 그 양자 사이에 상호성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알려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삼위일체적인 사랑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소진되지 않는 무한한 사랑의 자원에 연결되고,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은 차고 넘치며 나와 하느님이 서로 주고받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차고 넘치는 풍요로운 이미지를 우리에게 주시고 계십니다.
# 오늘의 기도
선하신 하느님,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기소서. 나로 하여금 거짓과 불행, 혹은 저주하는 모습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당신은 언제나 좋으신 아버지이시니 제가 주님의 얼굴을 간절히 바라나이다. (시편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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