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 37:19
주 야훼가 말한다.“나 이제 에브라임 수중에 있는 요셉과 그와 한편이 된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쓴 나무 막대기를 유다의 이름을 쓴 나무 막대기에 붙여 한 막대기로 만들리라. 둘이 하나가 되게 내가 잡고 있으리라.”
요한 11:50-52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 이 말은 가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을 한 셈이 다. 그 예언은 예수께서 유다 민족을 대신해서 죽게 되리라는 것과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죽는다는 뜻이었다.
# 오늘의 묵상: 참된 일치와 거짓 일치
오늘의 두 성서본문에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진리를 묵상할 수 있는데, 일치를 이루는 데에는 좋은 방법과 나쁜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 1독서인 에제키엘서에서, 야훼께서는 예언자에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퍼포먼스를 하라고 명하십니다. 예언자에게 막대기 두 개를 가져다가 하나에는 “유다와 그에 충성하는 이들” 이라고 쓰고, 다른 하나에는 “에브라임과 그에 충성하는 이들” 이라고 쓰라 말씀하십니다(37:16). 물론 이 두 막대기는 이스라엘의 두 왕조를 나타내는 것인데, 야훼께서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서, 두 막대기를 하나가 합쳐 들고 있으라.” 고 하십니다(37:20). 이 두 작은 체제가 하나의 큰 일치를 이루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오늘 “긍정적 이미지” 라고 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서두는 야훼께서는 두 왕국을 하나로 “모아 들여” 그들을 “구출” 하고, 그들을 “정결” 케 하고, 그들과 “평화의 조약” 을 맺으시리라 약속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장막을 지으리니,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며,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에제 37:26-27)”는 이 장엄한 말씀은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치 하시는지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긍정적 에너지인 사랑과, ‘목양’ 그리고 그들 가운데 하느님의 거룩한 현존을 드러내심으로 일치를 이루십니다. 이것이 좋은 방법으로 일치를 이루는 길입니다.
이제 복음서는 내일부터 성주간으로 들어서게 되는 시점에서, 인류가 일치를 만들어 가는 아주 보편적인 방식을 보여 줍니다. 이에 대해 ‘르네 지라(Rene Girad)’는 ‘부정적 만장일치’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중심으로 결속하여 일치를 이룰 수도 있으며 반대로 어떤 사람이나 이슈를 매개로 형성되는 불안, 험담, 편집증 같은 부정적 심리를 이용하여 결속을 만들어 갈 수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를 중심으로 결속하는 것이 훨씬 더 많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후자가 더 효율적이며, 사랑을 통한 것 보다 더 빨리 더 공고하게 그룹들을 모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결속의 외침은 ‘예수를 죽여라’ 입니다. 예수는 그들이 ‘하나’ 되게 하는 결속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대사제인 가야파는 권력자들이 잘 사용하는 “국가 보안상태”(요한 11:48-50 참고)에 대한 불안심리를 이용하여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논리로 사람들을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이제 성주간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일치를 조작하기 위하여 속죄양을 만드는 전략이 선택되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통한 더 깊고 새로운 일치가 이날 시작되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하였습니다. ”일치를 이루는 데에는 오늘날도 두 가지 길이 있는데, 그것은 불안과 증오의 길 그리고 사랑의 길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모으고’ 계십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하느님의 ‘직무 내용 설명서’ 에는 에제키엘이 두 막대기를 합치는 비유어린 행동이 들어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항상 이 두 가지 방법 중 사랑의 방법만을 택하십니다.
# 오늘의 기도
우리의 속죄양이신 예수여, 당신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늘 인류의 문제와 당신의 해결법을 동시에 보여 주시나이다. 저를 도우사 당신의 해결법에 사용되게 하시고, 속죄양을 만들고 박해하는 짓을 그만 두게 하소서. 이제 저는 알았나이다, 저도 당신을 죽이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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